“모든 여성을 위한 고소”…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거리 성추행 사건에 법적 대응 착수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수도 멕시코시티 거리에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는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여성을 위한 고소”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여성 안전과 대통령 경호 체계 논란은 물론 멕시코 사회 전반의 성폭력 현실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가 고소하지 않으면 어떤 메시지가 되겠는가”
셰인바움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날 대통령궁에서 교육부 청사로 걸어가던 중 완전히 취한 남성이 다가왔다”며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나는 모든 여성을 위해 고소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로 규정하며 “내가 고소하지 않으면 멕시코 여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런 일이 대통령에게까지 일어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오후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시티 중심부에서 시민들과 인사하던 중 자신의 뒤에서 남성이 접근해 목덜미에 입을 대고 상체를 만지는 추행을 당했다. 그 장면은 시민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경호원이 문제의 남성을 급히 제지했고 대통령은 놀란 듯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남성을 바라보며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고 주변에 말했다.
“한 명에게 손대면 모두에게 손대는 것”클라라 브루가다 멕시코시티 시장은 “대통령께서 ‘모든 여성이 도달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여성혐오의 관행을 끝내자는 약속이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도달했다’는 말은 여성들이 이제 사회적 평등과 존엄의 지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쓰였다.
브루가다 시장은 이어 “한 명에게 손을 대면 모든 여성에게 손을 대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강하게 규탄했다.
“성희롱, 여전히 연방 차원에선 범죄 아냐”…법 개정 검토 착수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방 차원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명확히 범죄로 규정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성희롱은 멕시코시티에서는 범죄지만 모든 주(州)에서 그렇지는 않다”며 “모든 여성이 나처럼 고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여성의 신체 공간은 침해될 수 없다”며 “이 문제를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남성의 태도 변화를 이끌고 여성의 신고가 낭비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대낮에도 일상적인 폭력”…여성들 “놀랍지 않다”사건 직후 현지 소셜미디어(SNS)에는 “놀랍지 않다”는 여성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여성들은 “이런 일은 일상”이라며 공감의 목소리를 냈다. 한 여성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도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이런 일은 너무 흔하다. 익숙해져서는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셰인바움 대통령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웬디 브리세뇨 전 국회의원은 “그가 직접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런 폭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경호 공백 논란”…대통령 경호 최소화 방침 도마 위
셰인바움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대통령 경호대를 해체하고 소수의 보좌진만 두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경호 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멕시코 안보전문가 라울 베니테스 마나우트는 “2018년 경호대 해체 이후 고위직 인사를 위한 전문 보호 체계가 복구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은 그 공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우리는 국민과 떨어져 살 수 없다”며 “경호를 강화하기보다는 시민 속에서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멕시코 여성 70%가 폭력 경험”…대통령 “변화를 이끌겠다”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15세 이상 여성의 70%가 한 번 이상 폭력을 경험했고 절반은 성적 폭력을 겪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 피해로 끝내지 않겠다”며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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