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죽음의 상징’에서도 자연의 동식물은 이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은 바다에 가라앉은 독일 나치의 불발탄을 터전으로 사는 해양생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독일 연안 해역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남겨진 불발탄 약 160만톤이 쌓여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독일 칼 폰 오시에츠키 대학 등 공동연구팀은 발트해 뤼벡만에 심해 무인잠수정을 보내 탐사한 결과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수심 20m 아래에서 과거 나치가 사용한 순항미사일 10발이 발견된 것에 이어 주위에 많은 해양생물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불발탄 표면을 중심으로 1제곱미터당 약 4만 마리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해양 연충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물고기 3종과 게 1종, 말미잘 1종 등과 함께 많은 불가사리도 발견됐다. 이 해양 생물은 대부분 폭탄 표면을 덮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노란색 TNT 화약 부분은 피했으며 불가사리만 유일하게 그 위에 쌓여 있었다.
이에 대해 논문 주저자인 해양 생물학자 안드레이 베데닌은 “정말 놀랍고 기괴한 발견”이라면서 “불가사리가 왜 폭발물 위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화약에 부착된 박테리아 막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모든 것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 지금은 많은 생명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이 발견은 아이러니하다”면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현장 인근에 사슴과 같은 동물이 번성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앤 인바이런먼트’에 실렸다.
박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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