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 적자생존은 자연의 섭리다. 산과 들에 있는 나무와 풀은 모두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지만 사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한자리에 뿌리를 내려 사는 식물은 위치를 옮기지 못한 채 물과 영양분, 햇빛을 받기 위한 무한 경쟁을 벌인다. 예를 들어 이웃한 식물이 줄기와 잎을 펼쳐 햇빛을 가리면 줄기를 뻗어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과학자들은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이나 명령을 내리고 조절하는 뇌가 없는 식물이 어떻게 환경을 인식하고 반응하는지 비결을 연구해왔다.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의 피에르 가우트라트·롤랜드 피에릭 교수는 식물에는 환경에 적응하는 호르몬 투자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식물에서 다른 식물에 의해 햇빛이 가리는 상황을 인식하는 물질은 빛에 민감한 색소인 피토크롬(phytochrome)이다. 피토크롬은 적색 파장의 빛과 바로 그 옆에 있는 원적외선의 비율에 반응한다. 경쟁이 심해서 햇빛을 받기 어려운 경우 원적외선의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눈 없는 식물도 이를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은데 피토크롬이 보낸 신호만 보고 키를 높였다가는 쓸 수 있는 영양분이 없어 정작 잎처럼 광합성에 필요한 부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식물의 뿌리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인 사이토키닌(Cytokinin)이 이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토양의 영양분에 충분하면 사이토키닌이 많이 생성돼 줄기까지 신호를 보낸다. 여기에 파이토크롬의 신호가 감지되면 줄기를 키우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영양분이 부족한 식물에 사이노키닌을 투여해 식물을 크게 성장하게 했다.
눈이나 뇌 같은 장기가 없는 식물도 나름의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그래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한가하게 햇볕을 쬐는 이름 없는 잡초도 사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연구 결과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