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와 깃발 그리고 자유 [으른들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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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의 붓끝에서 피어난 자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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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캔버스에 유채, 260x325㎝, 루브르 박물관


매년 7월 14일, 프랑스는 바스티유 감옥 함락을 기념하며 자유·평등·우애의 정신을 기린다. 억압의 상징이 무너진 이날은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자 민중 주권의 탄생을 알린 역사적 순간이다. 그러나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 불멸의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그림이 아니다. 이 작품은 1830년 7월 혁명의 이상이 흔들리고 다시금 자유를 향한 열망이 불타오르던 격동의 시대를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다시 일으킨 혁명: 미완의 이상을 향한 행진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왕정복고는 계속됐고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통치 아래 민중의 불만은 깊어만 갔다. 특히 샤를 10세의 언론 탄압과 의회 해산 시도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파리 시민과 노동자, 학생들이 거리로 다시 뛰쳐나와 봉기했다. 격렬한 시가전 끝에 샤를 10세는 퇴위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1830년 7월 혁명은 민중이 스스로 왕정을 폐위하고 입헌군주제를 재수립하며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혁명의 심장, 자유의 여신들라크루아의 캔버스 중앙에는 삼색기를 높이 치켜든 자유의 여신이 압도적 존재감으로 전장을 가로지른다. 그녀의 머리에 얹힌 프리기아 모자는 고대 로마의 해방 노예가 쓰던 것으로, 자유 시민의 숭고한 상징이다. 그러나 여신은 고전 조각처럼 완벽하게 이상화된 존재가 아니다. 맨발로 피와 흙으로 얼룩진 전장을 누비며 한 손에는 삼색기를, 다른 손에는 머스킷 총을 쥔 그녀의 모습은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 흘려 쟁취해야 할 치열한 투쟁의 결과임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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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여신이 쓴 프리기아 모자 부분


시쳇더미 속에서 피어난 민중의 힘들라크루아는 자유의 여신 뒤를 따르는 민중을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중절모를 쓴 부르주아, 칼을 든 노동자, 맨발의 부랑자, 쓰러진 병사와 소년까지. 그들은 계급과 신분을 초월해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하나 된 민중의 얼굴이다. 7월 혁명은 바로 이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완성됐다.

혁명의 과정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피로 얼룩져 있지만, 들라크루아는 그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강렬한 생명력을 포착했다. 그는 혁명을 미화하지 않고 그 본연의 위험하고도 치열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민중이 비로소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되는 숭고한 순간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서 민중의 끓어오르는 힘과 자율성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기록이다.

민중의 함성, 꺼지지 않는 자유의 불꽃이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아마도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일 것이다.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웅장한 다짐이 그림 속 행렬에서 울려 퍼지는 듯하다. 들라크루아는 시쳇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의 숭고한 의미를 포착해 200여년 전 프랑스 국민이 지켜낸 자유가 오늘날 우리가 수호하는 민주주의에 얼마나 값지고 위대한 영감이 됐는지 일깨워준다.

오늘날 우리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다. 당신에게 자유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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