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실화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
3부>여기는 캄보디아, 여기는 개미지옥
2회>프놈펜의 코인 사기단(2)
영철은 도준의 중학교 1년 선배였다. 학창 시절 싸움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일진’에 들어갈 수준은 못돼 힘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괴롭힘을 일삼았다. 2학년 때 신입생의 돈을 뺏으려고 커터칼로 위협하다 실수로 후배의 팔에 상처를 내 1년 정학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 덕분에 도준과 같은 반에서 졸업하며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영철은 고등학교에서도 사고를 일삼다가 퇴학당했고, 이후 별다른 직업 없이 불안정하게 전전했다. 20년 가까이 연락이 없던 두 사람은 1년쯤 전 강원랜드 바카라 도박장에서 재회해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몇 달 전 영철은 캄보디아에서 가상화폐 사기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는 도준의 연락을 받고 프놈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형,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한테 한 소리야?”
도준이 언짢은 표정으로 소파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영철은 그의 반발을 무시하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젯밤 일로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술집에서 만난 현지 여성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 그녀도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지갑만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영철은 반드시 그녀 일행을 찾아서 어제 일을 되갚아 주겠노라 다짐했다.
“야!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출근하는거야? 시간 맞춰서 빨리 빨리 다니라고 했지!”
‘우두머리’ 상기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며 도끼눈으로 노려보며 외쳤다.
정욱과 나은이 멋쩍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가로질러 소파 맞은 편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부터 연인이던 두 사람은 보이스피싱 가담 혐의로 지명수배가 내려지자 함께 캄보디아로 넘어왔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각자 프놈펜에서 따로 만나는 상대가 있었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관계였다.
두 사람은 얼마 전 한인 밀집지역의 작은 술집에서 우연히 상기를 만나 통성명을 했고, 단박에 서로의 정체를 짐작했다. 곧바로 상기가 준비하는 사기 계획의 시놉시스를 듣고는 참여를 결심했다.
“자, 이제 다들 테이블로 모이자구.”
‘파멸의 기획자들’ 총책인 상기가 가운데 앉았다. 그의 왼쪽으로 ‘2인자’ 도준이, 오른쪽으로 정욱과 나은이 자리했다. 소파에 누워 있던 영철도 천천히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도준의 옆으로 향했다.
“이번 시나리오는 내가 1년 넘게 고민한 블록버스터 대작이야. 모든 단계를 성공하면 100억원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벌 수 있어. 여러분들 주머니에 평생 만져본 적 없는 큰 돈을 채워줄 테니,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100억원’이라는 말에 이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상기가 자신있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스토리 라인을 성경에서 따왔어. 우선 주인공인 이성조 교수는 ‘예수님’이야. 30대 초반에 경제적으로 사망했다가 기적처럼 부활해서 ‘투자의 신(神)’이 되신 분이지. 그는 전지전능한 동시에 단 한 번의 오류도 범하지 않는 완벽한 존재야. 그래야 맨 마지막까지 그를 믿는 회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설거지 작전’을 걸 수 있으니까.”
상기가 신이 난다는 듯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회원들을 ‘파멸의 덫’으로 잡아끄는 역할을 하는 김가영 비서는 바로 막달라 마리아!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헌신한 마리아처럼 김 비서도 이 교수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이 교수와 김 비서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하니까 ‘금융 천재’ 도준이가 ‘1인 2역’을 맡도록 합시다.”
도준이 상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술이 덜 깬 영철이 얼굴을 찌뿌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권상기 감독님, 이성조 교수가 완전무결한 존재라면 ‘파멸의 덫’은 누가 놓지? 선역(善役)만 있으면 회원들에게서 돈을 챙겨올 수 없잖아.”
영철의 예리한 질문에 상기가 재밌다는 듯 답했다.
“그렇죠.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역할을 이 교수의 ‘제자들’이 합니다. 바로 형이 연기할 캐릭터들이지. 성경을 보면 가롯 유다가 은화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기잖아.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우리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이 교수는 제가 만든 가짜 코인 거래소를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줄 예정이야. 회원 누구나 이 거래소에서 몇 주 만에 투자금을 3배 이상 불리면 너도나도 그를 ‘절대자’로 모시고 싶어하고 다들 이 교수의 투자 리딩을 받으려고 안달이 나겠지. 하지만 그는 너무도 바쁜 존재이기에 ‘제자들’이 대신해서 회원들과 소통을 시작할 거야. 일부 제자는 이성조 교수를 넘어서겠다는 허영심에 들떠 있는데, 바로 이 허영심이 회원들을 잘못된 투자로 이끌어 파멸에 이르게 하지. 우리는 거기서 회원들의 돈을 모두 털어 ‘히트앤드런’을 하는 것이고.”
(31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나한류 작가 wjw.dignity@gmail.com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